2018년 5월 15일 화요일/ 새벽기도 109일째 설교 (창 109번째 설교)
109-109 창30:1-13
1.불신앙 – 1절“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 형을 투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생명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다. 시127:3“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라헬이 아들을 낳고 싶으면 한나와 같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라헬은 분을 발하며 자신이 아들을 못 낳는 것을 야곱의 탓으로 돌린다. 이는 왜 하나님이 레아에게 아들을 4명이나 주시는 동안 라헬에게 아들을 한명도 주시지 않았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라헬에게는 하나님 신앙이 없다.
라헬과 한나는 같은 처지였다. 라헬은 야곱에게 따졌고 한나는 하나님께 울었다. 라헬은 조급하고 단호했고 한나는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며 헌신적이었다. 그래서 라헬은 많은 아들을 원했으나 요셉을 낳고 둘째 베냐민을 낳다가 자신이 한 말이 씨가 되어 죽었고 한나는 사무엘 한 아들만 원했으나 사무엘을 낳고도 4명의 아들을 더 낳았다.
2.분노의 부작용 – 2절“야곱이 라헬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그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야곱의 발언은 생명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관하시는 고유 영역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간이 하나님에게 있는 생명의 주권을 침해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는데 이는 재앙을 예고하는 것이다.
야곱이 노를 발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신앙이 있는 자인데 라헬은 지금 자신의 불신앙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으니 화가 나는 것이다. 그러나 노를 발하는 것은 신앙인으로서의 태도는 아니다. 라헬에게 하나님의 섭리를 잘 설명했어야 한다.
신앙인으로서 화를 내는 것은 하나님께 누가 된다. 지금 둘의 모습을 보면 야곱이 라헬을 꾸짖는 면과 동시에 야곱이 라헬에게서 아들이 없는 것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면으로 비취기도 한다. 그래서 화를 내지 말고 조용히 설명해야 한다. 화를 내는 것은 불경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의 말에는 하나님에게 따지지 왜 나에게 따지느냐는 의미가 있다. 사람이 화를 내면 이처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게 된다. 잠27:4“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
약3:16“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시37:1-10“행학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롸/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3.신앙의 퇴보 – 3절“라헬이 가로되 나의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를 인하여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라헬은 언니 레아에게 대한 시기 질투로 인해 하지 말아야할 제안을 한다. 자신의 여종을 통해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이 자기의 아들로 입적이 되니 대신 아들을 낳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한 방법과 동일하다.
부인의 시기질투로 인한 분노가 남편의 신앙을 퇴보시키고 있다. 이는 일부다처제의 폐단이다.
4.자기중심 신앙 – 6절“라헬이 가로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소리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라헬이 그 여종 빌하를 첩으로 주어 아들을 낳으니 하나님을 찬양하는 듯하나 이는 하나님의 이름만 이용하고 자신의 목적 달성에 대해 대외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처럼 자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에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다고 하고 자신에게 고통이 있을 때에는 인본주의적인 사고로 대처하는 신앙은 병든 신앙이다.
5.경쟁심 – 7-8절“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잉태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라헬이 가로되 내가 형과 크게 경쟁하여 이기었다 하고 그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라헬은 오직 언니 레아가 아들을 4명 낳은 것에 대한 시기 질투로 인한 경쟁심에 자신의 여종 빌하를 이용하는 것이다. 아들 이름을 “납달리” 즉 “내가 형과 크게 경쟁하여 이기었다”고 했으나 그의 불신앙 속에는 내가 하나님과 경쟁하여 이겼다는 교만도 들어 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아들을 주시지 않아도 자기의 여종 빌하를 통해 낳았으므로 하나님과의 경쟁에도 이겼다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9절“레아가 자기의 생산이 멈춤을 보고 그 시녀 실바를 취하여 야곱에게 주어 첩을 삼게 하였더니”, 이제 레아도 라헬에게 질세라 서로 아들 낳기 경쟁에 들어섰다. 레아도 자신에게 출산이 끊어졌다고 생각하니 자기의 여종 실바를 야곱에게 첩으로 주어 아들 갓과 아셀을 낳게 한다.
두 자매는 지나친 경쟁심을 벌이고 있다. 그것의 배후에는 그들의 욕심이 자리 잡고 있다. 욕심은 죄를 낳는 시작이다. 약1:15“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갈5:24-26“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게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야곱의 태도이다. 두 자매가 서로 경쟁을 벌이는 구도에서 그것을 저지하기는커녕 그녀들이 계획하는 것을 다 받아들이고 있다.
6.이스라엘 형성 - 하나님은 인간의 이처럼 저속하고 부족한 행위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고 계신다. 야곱의 열두 아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를 세우신다. 하나님의 약속은 택한 백성의 허물과 연약함에 관계없이 성취된다. 롬8: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형성을 그리 경건치 않은 부끄러운 과정을 허락하시며 이루신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민이 된 것이 다른 민족에 비해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도 내가 잘나고 똑똑해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며 그에 맞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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