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31일 목요일/ 새벽기도 123일째 설교 (창 123번째 설교)
123-123 창33:12-20 약자보호, 하나님 의지 신앙, 내 편의에 주저 않지 않는 온전한 신앙, 하나님의 은혜와 내 노력으로 성취
1.약자보호 – 13절“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유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렸은즉 하루만 과히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청컨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가소서 나는앞에 가는 짐승과 자식의 행보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에서는 자신이 호위하여 야곱과 함께 가자고 하였으나 야곱은 자식이 어리고 양떼와 송아지들로 인해 사양한다. 어린 짐승에게 무리한 강행군을 하면 사상자가 속출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도 힘 있는 자는 힘없는 자의 형편을 헤아려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그들이 상하지 않게 이끌어 주어야 한다.
또한 야곱은 일단 이삭이 살던 헤브론에 정착하고 후에 에서가 있는 세일을 방문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삭이 죽어 두 형제가 만나기까지 야곱은 세일에 가지 못한다. 사람의 일이 마음 먹은데로 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2.신앙성숙 - 15절“에서가 가로되 내가 내 종주 수인을 네게 머물리라 야곱이 가로되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매”, 에서는 야곱의 안전이 걱정되어 자기를 따라가지 못하겠다고 하는 야곱에게 자기 종자 수인을 머물게 해서 지켜주겠다고 하나 야곱이 거절한다. 이는 마하나임에서 하나님의 군대를 만난 야곱은 이제 사람에게 의지하는 마음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더 커졌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도 사람을 의지하는 마음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커야 하고 사람은 하나님께서 복의 통로로 쓰임 받는 존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한 야곱은 신앙인으로서 가야할 곳이 있다. 가나안 땅 벧엘이나 헤브론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세일로 갈 수 없다. 즉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과 다른 신앙의 길로 가기에 흔들리면 안된다. 고후6:14-15“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2.불신정착 – 17절“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은 고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야곱은 계속해서 벧엘이나 헤브론으로 가야 했다. 그러나 그는 얍복 강 북방 약 16Km정도 떨어진 요단 동편 계곡에 위치한 숙곳에 집을 짓고 우릿간을 짓고 머무른다. 그 이유는 ①20년 간의 밧단아람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휴식을 취하고 싶었고, ②얍복강가에서 천사와의 씨름에서 환도뼈가 위골되어 더 걷기가 힘들었으며, ③형 에서와의 극적인 만남으로 인한 긴장이 풀어져 숨을 돌리고 싶었다.
그러나 숙곳에서 오랫동안 지체한 것은 결코 신앙적으로 유익한 일이 아니었다. 야곱이 숙곳에 머문 이유는 야곱 자신의 인간적인 필요에 의해서이지 신앙적인 측명에서가 아니다. 본문에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은고로”란 표현은 있으나 ‘하나님을 위하여’라는 표현은 없고 하나님을 위하여 조치한 것이 없다.
야곱이 가야할 곳은 벧엘이나 헤브론이었는데 이곳에 오래 머물다가 어린 디나가 이곳에서 자라 세겜에 이르러서는 창34장의 딸 디나의 강간사건과 세겜족 살육 사전과 같은 비극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있어야 하는 장소가 그래서 중요하다. 신앙의 장소로 가는 것이 인간적인 요건에 불편하다고 자기를 위해서 자기 편위적으로 불신앙적인 장소에 있게 되면 비극을 만나게 된다.
사람은 위기의 상황을 만나면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다가도 평안이 오면 신앙의 끈이 느슨해진다. 위기가 오면 평안의 소중함을 느끼고 평안을 달라고 신앙의 끈을 졸라매고 평안이 오면 펑안의 귀중함을 잊어버리고 신앙의 끈을 느슨하게 한다. 그러다가 또 평안이 없어지면 하나님께 기도한다. 이러한 사이클이 반복되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3.가나안 입성 – 18절“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에 이르러 성 앞에 그 장막을 치고”, 세겜은 가나안 땅 안에 있는 도시이다. 이제 야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입성한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벧엘 서원이행에 온전함이 빠져 있다. 야곱이 벧엘 서원을 온전히 행하려면 야곱이 정착해야 하는 곳은 세겜이 아니고 벧엘로 갔어야 한다. 이에 세겜 사건으로부터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화를 당하고 나서야 벧엘로 옮겨간다.
야곱은 짐승 떼가 너무 많아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성 앞에 장막을 친다. 세겜은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 산록에 위치한 예루살렘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60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이곳은 주변에 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방목하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19절“그 장막 친 밭을 세겜의 아비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은 일백개로 사고”, 언약의 자손 야곱이 하나님의 언약의 땅에 도착하여 그것을 돈으로 사서 자기 소유로 만들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약속이 일부 이루어 지는 큰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이 우리에 주시는 복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노력이 결합되어 소유하게 된다. 마7:7-8“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하나님이 주셔도 인간이 찾아야 하고 찾아도 두드려야 내 것이 된다. 훗날 여호수아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가나안 일곱 족속을 무찌르고 나서야 이스라엘의 땅이 되었다.
우리가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있어서도 지혜롭게 도와야 한다. 잘못도우면 상대방에게 더욱 게으름을 심어주게 되어 마음을 더욱 병들게 하는 경우도 있다. 지혜롭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댓가로 도움을 받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4.신앙회복 – 20절“거기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하였더라”, 단을 쌓았다는 것은 짐승을 잡아 제물을 드리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음을 말한다. 야곱은 지난 20년 간 자기를 지켜주시고 또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처음 들어와 단을 쌓고 또 야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단을 쌓는 신앙의 대가 차질 없이 이어졌음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엘엘로헤이스라엘”은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인데 이스라엘에도 하나님을 이긴 자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들어있으니 엘엘로헤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세 번이나 들어가 대단히 신앙적인 단어이다. 얼마나 야곱이 하나님께 감사를 느끼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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