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051 [강퍅] 삼상6:6 강퍅함의 제거는 징계로 인한 불행을 반전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배목새벽설교]

달려라33 2026. 2. 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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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1-115 0225 주일 삼상6:6 (20-393)

제목: 강퍅함의 제거는 징계로 인한 불행을 반전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OrpiZjJ33jM

 

블레셋 제사장들과 복술사들은 애굽의 바로가 강퍅함을 부렸다가 열재앙을 당한 후에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하게 한 것을 말하며 언약궤를 왜 이스라엘로 돌려 보내야 하는지 왜 돌려 보지지 않으면 안되는지를 설명한다.

언약궤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바로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주지 않았다가 열재앙을 당하듯이 블레셋도 언약궤를 돌려주지 않으면 돌려보낼 때까지 열재앙과 같은 연속적인 재앙을 당하게 될 것을 말하는 것이다. 29:1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즉 바로와 같이 마음을 강퍅하게 갖으면 재앙을 당하게 되니 하나님 앞에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그 존재에 겸허히 복종하라는 것이다.

강퍅이란 바싹 마른 북어를 젓가락으로 찌르면 전혀 찔리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지금 블레셋 제사장들과 복술사들이 블레셋 방백들에게 하는 말은 성경 어느 말씀 못지 않은 귀한 교훈을 담고 있다.

블레셋 백성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동함으로 징계를 면했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마음을 강퍅하게 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오기로 버티고 스스로의 힘으로 당해 내려고 하가간 패망의 지름길이 됨을 알아야 한다.

세상에서는 어느 정도 강해도 된다. 특히 세상 불의나 불의한 권세자 앞에서는 강해도 된다. 우리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무조건 겸허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워야 한다. 우리의 자만심, 자긍심, 자존심 그 무엇도 하나님 앞에서는 의미가 없다. 하나님 앞에서는 오직 순종만 있을 뿐이다.

만일 하나님이 매를 드시면 겸허히 맞겠다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 내 뜻과 다르다면 언제든지 나의 주장과 고집을 꺾고 겸허히 하나님의 뜻에 따르도록 스스로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4:6-9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이것이 당장은 손해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바보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멀리 내다보면 이것은 결국 우리의 불행한 상황을 반전시켜준다.

불행한 결과를 방지하고 생을 성공으로 이끌어 준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부드럽고 경손히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2053-117 0228 수 삼상6:7-9 (22-395)

제목: 일의 성사를 위해서는 양측의 의견을 두루 살피는 지혜가 필요하다

블레셋 제사장들과 술사들의 마지막 제안은 하나님의 일이건 세상 일이건 일을 진행시키고 설득하는데 필요한 인간 지혜의 극치를 보여준다.

지금 블레셋 방백들은 자신들이 당하는 재앙이 하나님의 언약궤 때문이라고 믿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 확신을 주기 위한 방법으로 새끼를 낳고 젖을 떼지 않은 멍에를 메어 보지 않은 암소 두 마리에게 수레를 끌게 하여 언약궤를 이스라엘 땅으로 보낼 때 소가 곧장 가지 않고 새기에게도 돌아오면 재앙이 우연이 온 것이요 곧장 가면 언약궤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제사장과 술사들이 제시하는 내용을 보면 언약궤를 이스라엘 땅으로 보내는데 있어서 성공 가능성보다 실패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새 수레는 만들어서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수레이기에 얼마나 정상 작동이 될지 의문이고, 멍에를 한번도 메지 않은 암소가 멍에를 잘 지고 수레를 끌고 갈지도 의문이고,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이는 어미소에게 송아지를 떼어 보내고 수레를 끌고 가라고 하면 그 소가 과연 송아지에게로 가지 않고 낯선 길을 잘 갈지도 의문이다.

그러면 블레셋 제사장들과 술사들은 언약궤가 벧세메스로 가지 않기를 발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블레셋 방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재앙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어려워 보이는 방법을 택한 것이고 그들의 마음속에는 출애굽을 열재앙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은 능히 인간의 확률적으로 낮은 경우라 하더라도 행하실 것을 아는 것이다.

그것은 귀한 금을 쥐 다섯 마리 독종 형상 다섯 개 즉 열덩어리의 황금을 함께 보내는 것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개념은 경홀히 다뤄서는 안 되는 분이라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을 자신의 신으로 믿지 않기 때문에 신앙적으로는 매우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목이다.

단지 재앙을 막능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지혜를 냈다는 것은 우리가 본받을 만 하다.

우리가 어떤 일을 중재하거나 성사시킬 때 어는 한쪽에만 유리한 조건으로는 일이 성사되지 않는다.

지금 정치권에서 발생되는 협상이나 합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자신이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하기 때문이다.

[동업 4번을 다 성공시킨 양보자]

양측에 대한 입장을 모두 깊이 생각하고 배려할 때 일이 성사된다. 그 누구도 자신이 무시를 당했다거나 가볍게 여겨졌다고 생각하는 한 그 제안이 아무리 좋아도 이루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이 무시당했다거나 가볍게 여김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그가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처를 받은 사람은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옳은 판단을 내릴 수가 없게 된다.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처지가 충분히 고려되고 배려되었다고 생각하는 한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13:15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궤사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지금 블레셋 제사장들과 복술사들이 재앙이 우연이 일어난 일이냐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냐를 분별시키기 위해 양쪽의 경우를 다 설명하는 것은 매우 지혜로운 처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천국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도 천국과 지옥을 설명할 때 나름대로 지혜로운 이론을 펼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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