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165 0502 목 삼상9:6-8 (28-551)
제목: 성도는 세상 사람 이상으로 사회적 예의를 차릴 줄 알아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uTey_TamH3I
사울은 하나님의 사람을 방문하게 되더라도 그에게 드릴 예물이 없음을 걱정한다. 당시 고대 사회에서는 선지자를 찾아 묻는 일에는 예물을 갖추는 것이 예의였다.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었을 때 아들의 앞 일에 대해 선지자 아히야에게 물으러 갈 때에도 여로보암 아내가 떡 열과 과자와 꿀 한 병을 가지고 간다. 왕상 14:1-4 그 때에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든지라/2 여로보암이 그 아내에게 이르되 청컨대 일어나 변장하여 사람으로 그대가 여로보암의 아내임을 알지 못하게 하고 실로로 가라 거기 선지자 아히야가 있나니 저는 이전에 내가 이 백성의 왕이 될 것을 내게 고한 사람이니라/3 그대의 손에 떡 열과 과자와 꿀 한 병을 가지고 그에게로 가라 저가 그대에게 이 아이의 어떻게 될 것을 알게 하리라/4 여로보암의 아내가 그대로 하여 일어나 실로로 가서 아히야의 집에 이르니 아히야는 나이로 인하여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더라
이 예물이 과한 것도 예의에 어긋나겠지만 격에 어울리지 않게 작아도 그 역시 격식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의는 항상 격에 맞고 적절해야 합니다.
「예기(예記)」에서도 보면 “삼가고 조심해도 예에 맞지 않으면 촌스럽다"라고 한다. 사울이 생각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예의이다.
사회 통념상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결코 지나치지 않으면서 부족하지도 않은 예의를 차리고자 한 것이다.
물론 예물이 있어야만 선지자를 찾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물을 부당하게 요구하는 선지자는 거짓 선지자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이 선지자를 찾아가는 데 있어 드릴 예물이 없는 자신의 형편을 걱정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을 존중하는 그의 인품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가? 간혹 성도들 가운데는 예의는 유교에나 있는 것이 지 기독교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다.
물론 지난날 유교의 폼생폼사 성향에 예절 문화가 지나쳐 허례허식으로 흘렀기에 그것은 기독교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많은 비판과 비난을 샀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그러한 문제 제기가 계속되고 있습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무례를 조장하거나 방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경에서는 성도가 지켜야 할 일정한 예의를 대단히 강조한다. 예를 들어 우리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청해 놓고도 사회 통념상 손님에게 차려야 할 일정한 예의를 차리지 않은 바리새인을 나무라셨다.
그리고 반대로 눅17장에서 예수님에 대해 하나님의 아들에 합당한 예로 향유를 부은 죄 많은 여인에게는 죄를 사하여 주시고 칭찬하셨다.
이외에도 성경은 본문의 경우와 유사하게 성도가 하나님의 종에게 일정한 예의를 지킬 것을 권면하고 있다.
또 이렇게 특별한 관계가 아니더라도 모든 인간관계에서 지켜야 할 일정한 예의를 반드시 지킬 것을 요구한다. 롬13: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고전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예기」에 보면 “예는 스스로를 낮추어 사람을 존경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고대 비극 시인 유리피데스(Euripides)는 그의 대표작 「히폴리토스(Hippolytos)」에서 “예의에는 매력도 있고 이익도 있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자신을 낮추어 존경을 표하는 예의는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에는 매력이 있다. 또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이익도 있다.
우리 옛말에도 '인사만 잘해도 밥 굶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 므로 혹 신앙과 예절은 서로 상반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러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따라서 신앙생활에서 든, 일상생활에서든 일정한 예의를 지킴으로써 상대방을 존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야곱도 형 에서를 만날 때 자신의 정성과 마음을 물질로 표현한다. 창33:11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나의 소유도 족하오니 청컨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예수님께서 문둥병자 10명을 치료해 주셨을 때 한 사람만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니 그는 구원까지 받는다. 눅 17:15-19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16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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