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153 [결단] 삼상11:7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과단성이 요구된다 [배목새벽설교]

달려라33 2026. 2. 1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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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3-217 0706 토 삼상11:7

제목: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과단성이 요구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NvtJq3HtJxE

 

본문을 보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의 소식을 들고 의분을 못 이긴 사울은 그 자리에서 자기가 몰고 오던 한 겨리의 소를 잡아 각을 떠서 온 이스라엘 지경에 보내며 군사를 소집한다.

참으로 사울의 새로운 면모가 나타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보면 그는 이전에 왕으로 선출되 었을 때 행구 사이에 숨을 정도로 소심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또 그는 왕으로 선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의 일을 하지 않고 고향에서 농사나 짓고 있었기에 우유부단한 인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그가 백팔십도 달라진 것이다. 그가 지금은 비록 기브아 촌구석에서 소나 몰고 농사나 짓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우유 부단하기만 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울에게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과단성이 있었다. 만일 사울이 길르앗 야베스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기브아 사람들과 같이 염려하거나 울기만 하고, 어떻게 하든 평화의 조약을 체결할 방안이나 마련하려고 했다면 누가 그를 이스라엘의 초 대왕이 될 재목으로 인정했겠는가?

하지만 그는 암몬의 침공 소식을 듣고 하나님의 신에 의해 감동되자 당장 그 자리에서 자신이 몰고 오던 소를 잡으며 전의를 불태우고 사람들에게도 전의를 고취시킨다.

즉 그는 암몬과 일전을 벌이기로 결단하고 그러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한 것다. 대단한 과단성이다. 그가 이렇게 과단 성 있는 태도로 나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의 명을 좇아 모두 한 사람같이 나아온다.

이렇게 하여 모인 수가 무려 33만이다. 가나안 정착 이후 최대의 숫자가 집결한 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성도들에게는 무릇 이와 같은 과단성이 요구된다. 여호수아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과단성있게 여호와 신앙을 선택할 것을 백성들에게 유언한다. 24:15-16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 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백성이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니

다니엘도 어릴 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궁중교육을 받는 중에 우상에 받친 왕의 진미와 포도주르 자기르 ㄹ더럽히지 않겠다는 결단을 환관장에게 말한다.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던지다가 예수님의 부름을 듣고 망설임 없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다. 4:18-20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야고보와 요한 역시 그물을 깁다가 예수님의 부름을 듣고 즉시 좇았다. 4:21-22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22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마태는 세관에 앉았다가 예수님의 부 름을 듣고 즉시 좇았다. 9: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즉 그들이 무식한 어부이고 죄인 세리라고 말들 하지만 사실상 성경이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그들은 비록 어부이고 세리로서 당시 사람들로부터 그렇게 주목받을 만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지만 예수님의 부르심에 당장 자기의 생업을 내던지고 따를 정도로 과단성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는 그들이 보통 어부, 보통 세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자기가 사도로서 일하게 된 데에는 이러한 과단성 있었음을 내비친 바 있다.

1:13-17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16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하나님께서 들어 사용하시는 사람은 바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에 주저하지 않고 과단성을 가지고 에4:16과 같이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우리는 어떠한 성도가 되어야 하는가? 자꾸 남이 차지하고 있는 높은 자리, 좋은 자리에만 마음 빼앗기는 성도가 아니라 어떠한 결정적인 시기가 이르면 우물쭈물하지 않고 주를 위해 결단을 내리고 나설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그런 성도만이 지도자가 될 수 있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들어 크게 사용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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