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4-318 241216 월 삼상15:18-20
제목: 성도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피할 길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91XV4qMtYo
본문을 보면 사울이 얼마나 머리가 좋 고 사악한 사람이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문에 나타난 사울의 변명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 사울에게는 전혀 죄가 없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수행했다. 기름 진 양을 사로잡아 온 것은 사울과는 전혀 무관하게 이스라엘 백성이 한 일이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위도 사실상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들이 취하기 위해 가져온 것이 아니라 사무엘의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논리를 따르면 사과할 것은 사울이 아닌 사무엘이다. 과오를 범한 것은 사울이 아니라 '실상을 아무 것도 모른 채' '철저하게 오해하여' 사울이 잘못을 범했다고 성급하게 단정을 내리신 여 호와다.
이 얼마나 완벽한 핑계인가? 실로 사울은 자신의 행위가 들통날 것을 대비해 이미 빠져나갈 방법을 다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은 비단 사울만이 아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다가 40일만에 내려왔을 때 아론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신상을 만들었을 때에도 변명한다.
출32:24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떼어 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세상에서 불의의 그릇된 길, 가서는 안될 길을 걸어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준비하는 대비책이다. 그릇된 길인지 알고 걸어가는 사람치고 만일에 대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또 그 대비책 내용을 보면 얼마나 완벽하고 그럴 듯한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 게 완벽한 대비책을 마련한다고 해서 정말 그것이 그들에게 피할 길이 되는가? 결코 안 된다. 왜 안되는가? 사태의 진상을 정확히 알고 계시는 우리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이렇게 완벽하게 피해 나갈 길을 마련한 사울이 무사히 빠져나 갔는가? 그가 좋은 머리로 고안해 낸 피할 길이 정말 피할 길이 되었는가? 아니 다.
전혀 피할 길이 되지 못했다. 계속되는 내용을 보면 그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하나님과 사무엘에게 완전히 버림당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만일 그가 이런 피할 길을 내지 않고 차라리 아무런 준비도 없다가 책망을 듣고 회개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이미 밤새워 사무엘이 기도한 것이 있었기 때 문에 하나님께서도 사울에 대한 '후회'를 거두시고 재기의 기회를 주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울은 그만 자신의 머리로 피할 길을 만들어낸 것이 자신의 사악함만을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그것이 망할 길, 죽을 길이 되고 만 것이다. 렘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사악한 길, 그릇된 길, 범죄자의 길, 불순종 길을 걸어가면서 그것을 정당화하고 변명하기 위한 인간적인 피할 길을 마련하지 말아야 한다. 시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4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 하리이다/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진정 떳떳한 성도, 의로운 성도는 어떠한가? 비록 자신이 바른길을 가는 데에 어려움이 있어도 스스로 피할 길을 마련하지 않고, 피할 길이 보이지 않아도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간다. 왜 그런가?
성도의 피할 길을 마련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성경을 보면 수많은 성도들이 피할 길을 마련하지 않은 채 막다른 길을 걸어갔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기에 실패하신 적은 없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풀무에서도 구원을 얻었고, 다니엘은 사자굴에서도 구원을 얻었다. 이제 이런 점을 깊이 생각하셔서 불의의 길을 걸어가면서 얄팍한 인간적 꾀로 자신을 구하려고 하기보다는 비록 고난이 예상되고 피할 길이 없을지라도 의의 바른길을 굳건히 걸어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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