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210 [믿음] 삼상14:8 믿음은 때로는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일 수 있다 [배목새벽설교]

달려라33 2026. 2. 2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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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74 241008 화 삼상14:8

제목: 믿음은 때로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1trXURPCKw

 

요나단은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보이리니"라고 한다. 즉 자신과 병기든 자가 어떻게 블레셋 진영으로 들어갈 것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이 계획은 참으로 무모하고 어리석다고 여겨진다. 단둘이 블레셋 진영으로 가면서 그들이 다 알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금 사절로 블레셋 진영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그들과 싸우기 위해 가는 것이다.

그런데 단둘이서, 그것도 공개적으로 간다면 과연 그들과 싸움이나 제대로 해 볼 수 있겠는가? 은밀히 침투해도 군사 몇을 죽일까 말까 할 터인데 공개적으로 적진에 뛰어 들겠다고 하니 이것이 어찌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요나단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적진으로 가겠다고 한 것은 그의 확신 있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서 요나단은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고 고백하였다.

그렇다면 그가 공개적으로 가든 은밀히 가든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느냐의 여부다. 사실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는다면 은밀히 침투한들 무슨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는가?

겨우 군사 몇몇을 죽이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기만 한다면 공개적으로 간다 해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싸우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은 요나단은 공개적으로 적진으로 향한 것이다. 실로 확실한 믿음에 근거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믿음이란 때로 요나단의 행위처럼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인다. 사실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은 세상적으로 볼 때 그 자체 가 어리석은 것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을 이루어질 줄로 믿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믿음이란 손에 쥔 것처럼 확실한 것이 아니다.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또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볼 때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이겠는가?

다니엘의 세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금신상에 경배하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목숨 걸고 풀무불에도 들어간다. 3:16-18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17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18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지금 우리 교회가 하고 있는 저녁10시부터 새벽3시까지 에스더기도운동본부에서 하고 있는 남북민족복음통일을 위한 매일철야가 믿음 없는 사람들 눈에는 어리석고 무모한 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믿음이 그렇게 무모하고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믿음 있는 자를 통해 드러나는 결과가 입증해 준다. 믿음으로 적진을 향해 뛰어든 요나단이 속된 말로 개죽음을 당하거나 블레셋에게 사로잡혀 그의 믿음이 공허한 것으로 판명되지 않는다.

14절을 보면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든 자가 반일경 지단 안에서 처음으로 도륙한 자만 이십 명 가량 된다. 또 그들의 행동을 보고 사기가 오른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을 쳐서 대승을 거둔다.

이렇게 바른 믿음은 분명한 증거를 가져오게 된다. 결코 무모하거나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실된 믿음의 효력을 의심하지 말고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확신해야 한다.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 라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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