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9-263 240924 화 삼상13:15
제목: 성도와 교회는 물량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527I78cgKjo
사울이 자기와 함께한 자들을 계수하여 보니 600명 가량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상비군의 오분의 일밖에 안되는 숫자다. 과거 사울이 암몬과 싸울 때 모인 이스라엘 군사의 수는 무려 33만이었다.
이 숫자로 볼 때 이번에 사울이 소집하여 모인 수도 그에 못지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남은 군사의 수가 겨우 600명에 불과하다.
사울은 이러한 결과를 방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법도까지 어겨가며 스스로 제사를 드리기도 하였다. 고대 전쟁에서 군사의 수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때문에 사울은 군사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사울이 여기서 결정적으로 간과한 것은 전쟁의 승패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달린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아들 요나단을 알고 있었다. 삼상14:6 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사실 인간적으로 보면 전쟁의 승패는 사람의 많고 적음이나 무기의 좋고 나쁨에 달린 것처럼 보인다. 또 실제로 그러한 요소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걸프전 에서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미군과 다국적군 은 이라크를 순식간에 초토화시키고 승리하였다.
현존하는 무기중에 가장 위험한 무기가 핵무기이기에 푸틴은 핵무기를 믿고 전쟁을 벌였으며 북한 금정은 또한 핵무기가 거의 신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진리는 전쟁의 승패가 사람의 수나 무기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전쟁사를 보면 적은 수의 군대와 열악한 무기로도 승리한 경우가 많다.
하나님이 역사하기만 하면 전쟁의 승패는 군사의 수나 무기와 관계없이 달라질 수 있다. 성경 사건은 과거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 현재에도 미래에도 발생 될 수 있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히스기야 당시 앗수르의 산헤립은 대군을 이끌고 유다를 침공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 이제 유다의 운명은 다한 것처럼 보였다. 그때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러자 산헤립의 앗수르 군사들은 그날 밤 18만 5천이 죽었으며 산혜립은 철군할 수밖에 없었다. 왕하19: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 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여호와의 사자가 어떤 방법으로 185,000명의 군사를 송장으로 만들었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지진이든, 화산폭발이든 역병이든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결과가 중요하기에 결과만 기록한 것이다.
이렇게 전쟁의 승패는 사람의 수에 달린 것이 아니다. 것은 비단 전쟁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닙니다. 모든 일의 성공과 실패는 제재물의 많고 적음 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애굽이 강해 보인다고 하나님보다 애굽을 더 의지했다가 이스라엘은 패배를 당하게 도니다. 사31: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그러나 연약한 인간들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사실 우리 인간들은 무엇이든지 많으면 좋고 성공한 것처럼 여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숫자를 상당히 과시한다. 이것을 가리켜 소위 물량주의(物量主義)라고 할 수 있 다.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기 위하여 많은 재물을 자랑한다. 어떤 단체는 그 힘을 과시하기 위하여 회원수가 얼마 인지를 내세운다. 유한한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앞에서 말하였듯이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수에 있지 않다. 그것은 하나님께 달린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셔야 승리도 성공도 가능하다. 하나님은 미디안 135,000을 기드온의 300명으로 승리하게 하신다. 삿7: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도 세상 사람들처럼 물량주의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교회들은 몇 명 모이느냐로 성공적인 교회냐 아니냐를 판단한다.
그래서 성도가 많은 교회를 이루면 성공한 목회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성도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그 교회의 담임목사의 구원은 별개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바울도 자신이 하나님께 쓰임은 받지만 자신의 죄로 인해 버림받게 되지 않을까 항상 조심한다. 고전9:26-27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성도들은 십일조를 얼마나 하느냐로 성공 여부를 말한다. 여기에 하나님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모두가 인간이 중심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은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다. 그것들은 시련의 바람이 불고 고난의 홍수가 닥치면 여지없이 무너진다.
블레셋의 군대를 보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숨거나 도망친 것과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량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 비록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하나님만 함께하신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성공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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