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203 [믿음] 삼상14:1-3 우리의 믿음은 환경을 초월하는 진취적인 믿음이어야 한다 [배목새벽설교]

달려라33 2026. 2. 20.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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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67 240928 토 삼상14:1-3

제목: 우리의 믿음은 환경을 초월하는 진취적인 믿음이어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4q3pXURNqnM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자기의 병기를 드는 부관에게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고 한다. 우리는 이 말을 보면서 요나단이 상당히 무모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 보면 만용이라 할만하다. 단둘이서 적진에 뛰어들겠다니 제정신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요나단의 이 말은 만용도 아니요, 제정신이 아니어서 한 말도 아니다. 그의 이 말은 6절에서 다시 한번 반복되고 있는데 그는 거기서 병기 든 자에게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한다.

즉 요나단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여 적진으로 가고자 한 것이다. 비록 자기 홀로 적진으로 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능히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말하자면 요나단의 믿음은 환경을 초월하는 진취적인 믿음이다.

당시 사울은 군사들이 겨우 600명 남짓 남은 일로 인해 대단히 의기소침해 있다. 2절에 보면 그는 기브아 변경 미그론 에 머물러 있다.

이는 그가 얼마나 의기소침해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마지못해 나와서 방비는 하지만 승리에 대한 확신은 갖지 못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3절을 보면 그의 곁에는 제사장 아히야가 에봇을 입고 있었지만 그도 별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한마디로 사울은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다.

그는 하나님의 도움은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다. 아니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즉 그의 신앙은 형식적인 것이었고 때문에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그 아비와 같지 않았다. 요나단의 신앙은 살아 있 는 진실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군사의 수나 싸우는 병기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는 감히 자신과 병기 든 자 단둘이서 적진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요나단의 신앙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신앙이 아니었다.

요나단의 신앙은 환경에 눌려서 꼼짝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경을 초월하여 전진하는 진취적인 신앙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진취적인 신앙을 여호수아와 갈렙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스 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접경지대인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렀을 때에 모세는 12명의 정 탐꾼들을 가나안에 파견한다.

그들은 40일 동안 가나안을 두루 탐지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가나안이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와서 보고할 때 10명의 정탐꾼들이 최종적으로 보고한 내용은 13: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33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들의 보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낙심시키기에 분명하였다. 그들은 오직 가나안만 바라보고 애굽을 나와 험난한 광야를 지나온 자들이다. 그러니 이 보고를 듣고 어찌 낙심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너무 낙심한 나머지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까지 한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다. 그들은 다른 정탐꾼들과는 달리 이렇게 말한다. 13:30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14: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고 했다.

즉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른 정탐꾼들과 동일한 상황을 목격하였지만 그것을 보는 눈이 달랐던 것이다.

다른 정탐꾼들은 육신의 안목으로 본 까닭에 부정적인 보고를 한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눈으로 본 까닭에 능히 이길 수 있다 는 긍정적이며 진취적인 보고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나안 족속이 거인이기에 그들을 이기면 주변 나라에 소문이 나서 우리를 무서워할 것이고 그들의 성이 높으니 우리것이 되면 우리가 성 쌓는 수고를 안해도 되니 할레루야인 것이다.

결국이 그렇게 가나안 거민을 과대평가하고 두려워하던 이들은 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14:23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그들은 다 광야에서 스러져 갔다. 이에 반해 진취적인 믿음을 가졌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에 들어가 기업을 차지한다.

곧 진취적인 믿음의 사람만이 '가나안'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11:12 세례 요한의 때 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 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즉 진취적인 믿음을 가진 자만이 천국을 차지할 수 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큰 자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그것을 보여준다. 3:16-17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별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우리는 주변 환경으로 인해 마음이 약해지거나 의기소침하 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특별한 능력 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진취적인 믿음을 가지고 전진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능케 하신다. 그러므로 차후로는 주변 환경에 매몰되는 성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전진하고 또 전진하여서 최후 승리자로 발견되는 성도가 되도록 해야 한다.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 라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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