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3-287 241025 금 삼상14:29-30
제목: 올바른 신앙이란 계시와 함께 상식과 이성도 존중하는 신앙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ziWY5MsIUxM
사울의 금식령에 대한 백성의 이야기를 들은 요나단의 반응은 백성을 통해 사울의 맹세와 저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책이나 후회, 두려움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판 섞인 탄식을 한다.
곧 부친 사울이 무모하고 어리석게 행동함으로써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한다. 그는 부친의 어리석음에 대해 탄식하기를 소량의 꿀을 먹는 것만으로도 원기가 회복되었는데 적으로부터 탈취한 것들을 먹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더 힘을 얻어 성공적으로 전쟁을 했겠느냐고 한다.
이에 대하여 혹자는 일찍이 수7장에서 가나안의 전리품을 탐내다 심판을 받았던 아간의 예를 떠올리며 부정한 블레셋 족속으로부터 탈취한 것을 먹는 것은 비성경적인 행위가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아간의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고 독특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곧 그때는 처음 가나안에 입성한 때로서 첫 수확물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과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외의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오히려 적으로부터 얻은 것으로 보급을 삼는 것이 오히려 성경적이다.
신20:13-1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붙이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속의 남자를 다 쳐 죽이고/14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육축과 무릇 그 성중에서 네가 탈취한 모든 것은 네 것이니 취하라 네가 대적에게서 탈취한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것인즉 너는 그것을 누릴찌니라
굳이 성경을 들추지 않더라도 전쟁 중인 군대가 탈취물을 통해 보급 물자를 얻는 것은 병법상의 상식이다. 병법 가운데에는 이를 역으로 이용하는 견벽청야 (堅壁淸野)라는 것도 있다. 곧 적이 쳐들어 올 경우 성벽은 굳게 지키되 적이 머물만한 곳의 우물을 막고 식량을 불태워 버림으로써 적으로 하여금 현지에서 보급품을 얻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요나단은 이러한 말씀과 병법적 지식에 기초하여 부친 사울의 어리석음을 탄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교훈을 말씀해 준다. 앞서 요나단은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다며 한 명의 호위병만 데리고 적진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또 한 사울 역시 전쟁 가운데 금식령을 선포했다. 이들 모두는 어찌 보면 매우 무모한 것 같고 어찌 보면 매우 신앙적인 것 같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대단히 큰 차이가 있다.
즉 요나단의 행동은 철저히 말씀과 신앙에 기초한 것이면서도 이성과 상식과 조화되는 것인 반면, 사울의 맹세는 오직 자기 고집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통해 진정한 신앙이란 말씀과 계시에 굳게 서면서도 동시에 이성과 상식을 존중하는 조화롭고 융통성 있으며 열린 신앙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성도들 가운데에는 간혹 이성과 상식을 거론하면 비신앙적라고 매도하고 믿음이라면 무언가 신비롭고 기괴한 것만을 연상하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중한 병이 든 환자를 병원이 아니라 무허가 기도원으로 데려가 안수 기도로 고친다며 마구 때려 숨지게 하는가 하면 심지어 죽은 자식을 살린다며 집안에 한 달 이상 그대로 두 어 경찰에 구속되기도 한다.
바울은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약한 위장을 위해 포도주도 활용하라고 한다. 딤전5: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또 어떤 사람은 정상적인 말씀은 제쳐두고 예언과 방언 기도하는 곳만 찾아다니며 급기야는 재림 주를 맞는다며 모든 것을 팽개치고 산꼭대기로 올라가기도 한다.
하지만 고전12-13장을 보면 누구보다도 영적 능력이 많았던 사도 바울은 그러한 은사 중에서도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지녀야 할 사랑을 최고의 은사로 꼽는다.
또 딤전3장, 딛1장을 보면 교회와 성도를 책임질 일꾼을 선발하는 기준으로 무슨 신비 체험이나 이상한 능력이 아니라 믿음과 아울러 정직과 성실 등 매우 상식적인 자질을 우선한다.
또 어떤 송사가 있을 경우 독심술이니 관심법이니 하는 괴상한 방법이 아니라 객관적 입증을 위해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을 세우라고도 한다. 딤전5:19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올바르고 참다운 신앙이란 결코 기괴한 그 어떤 것이 아니라 계시와 이성, 믿음과 상식이 조화된 건전한 것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알아야 한다. 롬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그리하여 그 어떤 신비한 것을 좇기 전에 먼저 말씀에 기초하여 가장 건전하고 윤리적인 삶을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은 물론 세상으로부터도 칭찬 듣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