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6-330 250102 목 삼상15:32-33
제목: 하나님 앞에서 부리는 오기와 교만은 자멸의 전주곡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7HDZ7iwKoII
본문에서 우리는 사무엘이 다시 가서 사울을 보지 않았다는 증거를 만날 수 있다. 물론 사무엘이 그렇게 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울의 거역이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즉 사무엘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사울이 듣지 않을 것을 알았던 것 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반대 로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사무엘이 가지 않았다면 사울이라도 찾아왔어야 한다. 또 초청이라도 했어야 한다. 그는 선지자였고, 그보다 앞선 민족의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두 사람 사이의 공적인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울이 사무엘을 전혀 찾아가지 않았음을 반영한다. 지도자들은 자주 만나서 서로간의 마음을 맞추어야 하는데 만남이 없을 때 결과가 불행해 진다.
사울이 이렇게 사무엘을 찾지 않은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으로 추정된다. ①사무엘이 제사가 끝나기 무섭게 자기가 살려둘 것을 명령한 아각을 직접 처형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즉 자신의 권위를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라고 생각한 사울은 자존심을 내세워 다시 사무엘을 찾지 않은 것이다.
②더 이상 사무엘의 어떤 간섭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미 아말렉 정벌에서 아각을 살리고, 살찐 짐승을 살린 것을 통해 그는 이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었다. 그리고 사무엘이 자신을 찾지 않자 잘되었다는 심정으로 그를 더 이상 찾지 않은 것이다.
사울과 사무엘의 공적 만남이 소멸된 데에는 사울이 더 이상 찾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 요인이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여기는 또 다른 요인도 작용하였을 수 있다. 그것은 사울의 오만과 오기 때문이다.
아마 사울은 왕권을 휘둘러 백성들을 다스리는 일에 주의 종의 간섭과 지도가 굳이 필요하겠느냐는 생각을 했음이 분명하다. 이 기회에 아예 주의 종과 멀리하여 왕권을 마음껏 휘두르자고 생각했음직하다.
이는 비단 사울만이 가지는 마음이 아니다. 간혹 성도들 가운데도 한번 목회자와 틀어지면 그것을 빌미 삼아 주의 종과 멀어지고 교회와 멀어지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행태에는 교회와 목회자의 간섭을 더 이상 받지 않고 자유롭게 내 뜻대로 살아보겠다는 생각이 여실히 드러난다. 심지어 목회자가 여러 차례 방문을 하고 권유를 해도 오기를 부리며 교회에 나오지 않는 이들도 상당하다.
물론 당장은 좋을지 모른다. 항상 교회의 일정한 틀에 묶여 살다가 해방되니 자유가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좋은가? 사울의 끝을 보면 이후의 사울의 행적이 왕권은 자유롭게 휘두르지만 그의 정신은 점점 황폐화 된다.
얼마 못 가 악신이 그를 지배한다. 죄 없는 다윗을 죽이려고 끝없이 획책한다. 심지어 놉 땅의 제사장들을 몰살하는 죄악마저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그리고 거의 절정에 이르러서는 엔돌의 무당을 통해 사무엘의 영혼을 초혼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군급함을 호소한다. 과연 이것이 사람 사는 모습인가? 마23:37-38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본문을 통해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오기를 부리고 교만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여러분, 당장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교회를 가까이하며, 목회자를 가까이함으로써 약간의 속박을 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때로는 책망도 받고 교회의 어려운 일 들도 떠안을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 로 보면 그것은 우리에게 복이 된다. 연이 공중에 안정정으로 떠 있기 위해서는 연줄에 매여 있어야 한다. 연줄은 구속, 속박이 아니고 안정이요 평안이요 형통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에 약하기 때문에 그러한 과정을 통해 그릇된 길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에 동참함으로써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창4:6-7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이점을 깊이 생각해서 아무리 마음에 상처되는 일을 당했다 하더라도 늘 자신 을 낮추고 겸손히 하여 교회를 가까이하고 목회자를 가까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사무엘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268 [신뢰] 성도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 (삼상16:1) [배목새벽설교] (0) | 2026.02.24 |
|---|---|
| 2267 [성취] 삼상16:1 인간은 실패할지라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실패하지 않는다 [배목새벽설교] (0) | 2026.02.24 |
| 2265 [순종] 삼상15:32-33 하나님의 뜻은 성도가 온 힘을 기울여 실행해야 할 최우선 과제다 [배목새벽설교] (0) | 2026.02.24 |
| 2264 [회개] 삼상15:30-33 범죄한 영혼에게 시급한 것은 통회하고 자복하는 마음이다 [배목새벽설교] (0) | 2026.02.24 |
| 2263 [불변] 삼상15:29 하나님의 불변하심은 우리를 향한 약속의 가장 확실한 보증이 된다 [배목새벽설교] (0) | 2026.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