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4-258 240917 화 삼상13:11-12
제목: 성경은 결코 상황 윤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PBgCh-OoDXI
사울은 제사장의 권리를 침해하여 스스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데 대하여 사무엘에게 변명하고 있다. 즉 백성은 흩어지고 사무엘은 오지 않고 블레셋은 곧 공격해 올 것 같아서 스스로 제사를 드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울의 변명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상황이 그러하여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사울이 직면한 상황은 급박했다. 도무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처럼 보였다.
우리는 같은 인간으로서 사울의 심정에 동정이 간다. 이런 경우에 세상에서는 정상 참작을 하여 무죄 방면하거나 형벌을 주더라도 형량을 낮추어 준다. 그러므로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도 웬만하면 사울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만도 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사무엘의 답변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이다. 이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이다.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결코 정상 참작을 하시지 않으신다. 사울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인정하시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태도에 대하여 참으로 매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기본 태도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결코 어떠한 죄도 용납하시지 않으신다. 상황이 아무리 급박하고 인간적으로 볼 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법에 벗어나 행동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정죄를 면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상황 윤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상황 윤리란 1966년 조셉 플레쳐(J. Fletcher)라는 사람이 쓴 책의 제목으로 인하여 대중화된 표현으로 우리가 앞에서 말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정상 참작하는 것을 말한다.
즉 개인이나 교회, 그리고 어떤 공동체가 윤리적 선택을 할 때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상황 윤리자들의 주장이다. 특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의 보편 타당성과 불변성에 의문을 던지며 다만 그 상황에서 가장 큰 계명을 좇아 사랑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계명을 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부득이 하게 십계명을 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하나하나 예로 들며 사랑하니까 살인하고, 사랑하니까 간음하고, 사랑하니까 도적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니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는 죄를 어기는 것에 대해 사랑이 덮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낟.
그들의 이러한 주장은 현대의 상대주의 철학을 기독교 윤리학에 도입한 것으로 현대인의 사고 경향에 맞고 적절해 보 인다.
그러나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고전13:6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사랑이 아닌 불의와 함께하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외곡된 사랑일 수 없다. 더욱이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규범인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자기의 생각과 감정에 따라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각기 행동한다면 사회에 질서가 깨지고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상황 윤리란 용납될 수 없다.
우리의 경우를 돌아보면 말로는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하면서 실제 생활에서는 하나님의 법을 거스르고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며 자기 죄를 합리화한 일은 없는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잘못을 범하였을 때 죄를 시인하고 회개하는 것을 원하시지 사울처럼 변명하고 자기 합리화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당신의 법을 지키기를 원하신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결코 그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법, 우상철폐를 따른다. 단3:17-18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사도 바울도 선지자 아가보를 비롯한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가면 목숨이 위태로우니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중에 자신의 위태로움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으로 간다.
행21: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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